- *♥* 우리도 기뻐하자!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도 행복하게 잘 지내셨죠?
지난 주엔 예고도 없이 강론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피정에 함께 했던 분들께는 강론 전에 말씀을 드렸었는데,
지난 금요일에 어머님이 많이 위독하셔서
그날 운명하실 수도 있다고 해서 온가족이 병원에 다 모였었답니다.
새벽 세시 경에 겨우 안정을 찾으셔서 한씨름 놓을 수가 있었죠.
그래서 계속 병실에 있다보니 강론을 보낼 여유가 없었답니다.
주일엔 어머니께서 좀 안정이 되셔서 마음의 여유는 있었지만
아침 일찍 서강대학으로 천진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가
늦게 돌아와서 바로 어머니께 가야했기에 결국 올려드리지 못했습니다.
피정 때 만났던 천진암 가족들 정말 반가왔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도 많아서 좋았답니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구요! ^^*
제 어머니는 여전히 준중환자실에서 입원해 계십니다.
장출혈이 멎지를 않아서 계속 위험한 상태랍니다.
기도 중에 기억해주세요.
신분필(보나)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우리가 오늘 미사 중에 함께 노래할 화답송의 후렴입니다.
그런데 최민순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시편에서는
“…못 견디게 기뻐했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과연 우리 마음이 담긴 노래입니까?
형제 자매님은 지금 주님 앞에서 참으로 이렇게 기쁩니까?
우리는 누구나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르티매오와 같은 강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지금 어머님 병간호를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믿는 것인지 헷갈린답니다. ^^*
그럼 형제 자매님,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소경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 함께 살펴봅시다.
바르티매오는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구걸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지금 고정되어 있고 생계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고는 자신이 갈 수가 없으니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단순히 눈을 뜨게 해달라는 부탁이 아닙니다.
‘메시아가 불쌍한 이스라엘 사람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있습니까?’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소경의 강한, 신뢰에 찬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으며 그를 방해합니다.
그러나 그는 더 크게 외칩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오너라.”라고 하십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이십니다.
그러자 맹인은 겉옷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가 던져버린 겉옷은 구걸하기 위해서 앉아 있을 때 먼지를 막고
잠잘 땐 이불로 사용하던 그의 전 재산입니다.
자기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필요 없습니다.
그는 ‘저분이 나를 고쳐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가진 것이 적으니까 버리기도 쉽습니다.
부르심을 받고도 따르지 않았던 부자청년과 대조가 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청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스승님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당신을 따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서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뉘앙스를 지닌 말입니다.
정말 눈물 나는 장면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치유 이야기에는 반드시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따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이 갖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께 나아오면서 보여준 태도에서 그리고 확신에 찬 요구를 통해서
바르티매오의 강한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께서는
단순히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주셨습니다.
참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곧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에 의존해서 길을 갈 수가 있었지만
이제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뒤를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셨지만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예수께 구속된 것입니다.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소경의 믿음이 사도들보다 더 낫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지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티메오는 이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형제 자매님,
분명히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주님께서 저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못 견디게 기뻐하나이다.”
하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도 그런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그런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 중에 어려움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시련에 놓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을 잘 돌아봐야합니다.
내가 당하는 시련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바르티매오가 보여준 확고한 믿음을 우리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확고한 믿음을 지닌단는 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주신 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는 것,
바로 부활하신 당신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때는 우리도 자신 있게,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하고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이끌어 주십사 기원하면서
오늘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대구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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