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시대의 죄인
예수 시대의 죄인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죄인과 그 종류가 다르다. 우리는 보통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때에는 윤리적 죄를 지은 이를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웃이나 하느님께 윤리적 죄를 지으면 속죄의 제물을 바치면 용서를 받기 때문이었다.
예수 시대의 죄인이란 사회의 특수한 그룹을 가리켰다. 가난 때문에, 또는 직업상의 이유 때문에 율법을 이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이 그들이었다. 그 날 그 날 벌어먹기 위해서 안식일법을 지킬 수 없는 목자나 뱃꾼, 불결한 일을 하기에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창녀, 세리, 오물처리자, 잡상인, 백정, 넝마주이 등은 다 죄인이었다.
예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안아주신다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죄를 지은 이들을 용서하는 것과는 다르다.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규정된 이들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론상으로야 창녀도 세밀하게 규정된 참회, 정화, 보속 절차를 밟으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그 돈도 창녀짓을 해서 벌어들인 돈은 안 되었다. 세리도 마찬가지였다. 죄를 벗으려면 세리라는 직업을 버려야 하고, 세리 노릇을 해서 벌어들인 돈이 아닌 깨끗한 돈으로 속제 제물을 바쳐야 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율법 규정을 통해서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용서는 엄청난 용서이다. 비유 이야기에서 탕자는 방탕한 생활로써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급기야는 율법에서 철저히 금하는 돼지치기를 해 자신의 신원까지 잃어버린 사악한 죄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용서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용서는 율법에 의한 사악한 죄인으로 규정된 이들을 향한 용서이다. 다시는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신앙심 깊고 훌륭한 이들이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형성하신 초대 공동체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사람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시는 근본 목적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통상 우리가 갖고 있던 하느님에 대한 관념, '하느님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가?' 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관념을 고쳐주기 위해서이다.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중에서-
예수 시대의 죄인이란 사회의 특수한 그룹을 가리켰다. 가난 때문에, 또는 직업상의 이유 때문에 율법을 이행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이 그들이었다. 그 날 그 날 벌어먹기 위해서 안식일법을 지킬 수 없는 목자나 뱃꾼, 불결한 일을 하기에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창녀, 세리, 오물처리자, 잡상인, 백정, 넝마주이 등은 다 죄인이었다.
예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안아주신다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죄를 지은 이들을 용서하는 것과는 다르다.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규정된 이들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론상으로야 창녀도 세밀하게 규정된 참회, 정화, 보속 절차를 밟으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그 돈도 창녀짓을 해서 벌어들인 돈은 안 되었다. 세리도 마찬가지였다. 죄를 벗으려면 세리라는 직업을 버려야 하고, 세리 노릇을 해서 벌어들인 돈이 아닌 깨끗한 돈으로 속제 제물을 바쳐야 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율법 규정을 통해서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용서는 엄청난 용서이다. 비유 이야기에서 탕자는 방탕한 생활로써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급기야는 율법에서 철저히 금하는 돼지치기를 해 자신의 신원까지 잃어버린 사악한 죄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용서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용서는 율법에 의한 사악한 죄인으로 규정된 이들을 향한 용서이다. 다시는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신앙심 깊고 훌륭한 이들이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형성하신 초대 공동체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사람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시는 근본 목적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통상 우리가 갖고 있던 하느님에 대한 관념, '하느님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가?' 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관념을 고쳐주기 위해서이다.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중에서-
출처 : 예수 시대의 죄인
글쓴이 : 주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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