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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익태 애국가' 국내 발간 첫 악보 발견

배은기 쌤 2008. 12. 3. 10:38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안익태(安益泰·1906~1964) 작곡 〈애국가(愛國歌)〉의 악보가 발견됐다.
애국가 전문가인 김연갑(金煉甲) 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최근 입수한 광복 직후의 자료인 1945년
11월 21일자 〈예술통신〉을 1일 공개했다. 이 자료는 1935년 11월에 작곡돼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는
안익태의 〈애국가〉가 1945년 말에 미국에서 국내로 전파된 경로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예술통신〉은 1945년 10월 서울에서 창간된 예술 전문 일간 통신지로, 제44호인 11월 21일자는 두 쪽에
걸쳐 안익태 작곡 〈애국가〉의 악보를 실었다. 지금까지 안익태의 〈애국가〉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불려진 것은 11월 23일 김구(金九)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장준하 《돌베개》)로
추정되고 있었다.
▲ 1945년 11월 21일자〈예술통신〉의 표지(오 른쪽)와 여기에 실린 안익태 작곡〈애국가〉 의 악보./김연갑씨 제공

이 자료의 관련 기사에서는 "현금(現今) 모든 우리의 의식(儀式)에서 혹은 학교에서 불러오고 있는 〈애국가〉 '동해물은…' 그 곡조 자체가 이별을 노래하는 스코트랜드의 민요에서 따온 것이어서 아는 이로서는 적지않이 유감으로 생각하게 하나 해방 이래 졸지에 누가 끄집어 내었는지 벌써 국가인체 상당히 보통화 되었기 때문에 한층 걱정을 사고 있는 지금"이라고 썼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애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로 불려지고 있었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예술통신〉은 계속해서 "최근 미국에서 귀국한 김평(金平)씨가 벌써 미국에서는 이 모순을 덜기 위하여 가사는 종전대로 두고 곡만은 4부로 전혀 창의적으로 지은 아름답고 웅대한 악보를 갖고 오시어 본 통신에 전하여 주시었다"고 썼다. 또 "같은 값이면 국가의 제정까지는 종래의 우스꽝스런 남의 곡을 버리고 이 곡을 부르는 편이 낫겠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서는 모든 국가 의식에 조선을 대표하는 때는 벌써 이 곡을 쓰고 있고 특히 조선어방송 시간에도 쓰고 있다"고 적었다.

이 기사를 분석한 김연갑 이사는 ▲이승만(李承晩) 박사가 태평양전쟁 발발 뒤 미국의 소리(VOA) 단파방송을 통해 조선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 방송을 할 때 안익태의 〈애국가〉가 함께 방송된 것으로 보이며 ▲재미교포 김평에 의해 1945년 11월 악보가 국내에 전달됐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애국가 가사에 붙여 부르던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불만을 지니고 있었는데 안익태의 곡이 소개되면서 '아름답고 웅대하다'라는 평가와 함께 이 곡으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안익태의 〈애국가〉는 1945년 12월 16~17일 이화여자고등학교의 '해방기념 음악회'에서 연주됐으며, 이후 고려악단에서 연주한 음반이 발매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 ▲ 광복 이후 국내 처음으로 발간된 안익태 작곡 '애국가'의 악보가 애국가 전문가인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에 의해 발견됐다.
출처 : '안익태 애국가' 국내 발간 첫 악보 발견
글쓴이 : 캄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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