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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빠의 일기장

배은기 쌤 2008. 8. 27. 19:41
     
    아빠의 일기장
    아빠는 환경미화원이셨다. 
    새벽1시,가족 들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나가시는 
    아빠의 구부정한 어깨를 몰래 지켜볼 때면 
    나는 '하필이면 왜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실까' 
    하며 내심 아빠를 원망했다. 
    등교길에 혹시나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아빠를 만날까봐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는 몸이 자꾸만 야위어 병원을 찾았는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당신의 얼굴을 보기 싫어했던지 
    더 이상 거울 앞에 서지 않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 날마다 '제발! 오늘 하루만 더' 를 수없이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빠의 50번째 생신날, 
    언제나 작업복에 운동화 차림이셨던 아빠에게 
    나는 처음으로 예쁜 꽃무늬 넥타이를 선물했고, 
    엄마는 검정색 구두를 선물했다. 
    그리고 친구에게서 빌려 온 사진기로 침대에 힘들게 
    걸터얹은 아빠의 팔장을 끼고 애써 웃음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한 달 뒤에 있을 내 졸업식에 아빠가 꼭 그 넥타이를 메고, 
    새 구두를 신고 참석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나 2월 어느 날, 내 졸업식을 앞두고 
    아빠는 결국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신사복 차림의 멋쟁이 아빠와 함께 교문을 힘차게 
    걸어나오고 싶었는데. 서러움에 복받쳐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아빠는 마치 이별을 예감하신 것 처럼 떠나기 며칠 전에 
    내게 아빠의 일상과 가족에 대한 걱정이 
    잔잔하게 적힌 일기장을 건네주셨다. 
    아빠를 떠나보낸 뒤 우리는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다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다. 
    엄마는 지금 시장에서 작은 야채 가게를 하신다. 
    바구니에 담긴 푸른 야채들처럼 엄마와 내 앞에 놓인 
    시간도 푸르리라 믿는다. 
    나는 가끔 아빠가 그리워질 때면 아빠가 남긴 일기장과 
    수첩 속에 끼워 둔 그날의 사진을 꺼내 본다. 
    사진 속의 아빠는 여전히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계신다.
    
    
    출처 : 아빠의 일기장
    글쓴이 : 리시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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