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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된 봉헌은?^^*

배은기 쌤 2009. 11. 9. 13:48


- *♥* 참된 봉헌은?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도 행복하게 잘 지내셨죠? 신종 플루가 극성이라서 모두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합니다. 저희 신학교도 남산동 교정에 환자가 많이 발생해서 남산동 교정만 잠시 휴교 중입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군요.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제 어머니께서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이제 출혈은 멎은 것 같고 폐혈증도 잡혀가는 듯합니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께 짐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형제 자매님, 많은 경우 우리는 위선과 기만 속에서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는 점점 삭막해지고 온갖 악이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전례의 독서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새롭게 신앙자세를 가다듬을 것을 촉구합니다. 형제 자매님, 제1독서는 예언자 엘리야의 활약상을 전하는 열왕기 상권의 한 부분입니다. 엘리야는 ‘나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라는 그 이름의 뜻대로 우상숭배에 대항하여 결사적으로 싸운 하느님의 투사였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을 강타한 기아와 황폐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인간적인 노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바꾸고자하는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벌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밖의 사렙타에 살던 한 과부는 하느님의 사자인 엘리야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것까지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자신이 믿은 바대로 상을 받았습니다. 그 과부는 하느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에 지금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까지도 요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과부를 대조시켜 우리 앞에 세우십니다. 율법학자들은 누구보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잘 사랑하기는커녕,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대접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율법학자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율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이용하여 힘없는 서민들, 과부들의 가산을 가로채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온갖 위선과 자기기만으로 위장하여 자신의 신심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회에서 과부는 가장 무력한, 다른 이들의 보호를 받아야 할 미천한 사람이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헌금함에 넣었지만 과부는 단 렙톤 두 개만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과부가 헌금 궤에 넣은 렙톤 2개는 육체노동을 하는 일꾼이 하루 일하고 받는 품삯(1데나리온)의 1/64에 해당하는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이었습니다. (오늘의 돈 가치로 환산해보면 우리나라 노동자의 하루 일당을 50,000원으로 계산하면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돈은 781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극구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돈의 액수를 보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과부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과부는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를 봉헌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도록 맡겨드리는 장한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저 과부와 같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사실 당신이 필요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실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복음의 부자들처럼 물질적인 봉헌으로 하느님께 드릴 것은 다 봉헌했다고 만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값나가는 황금이 아니라 당신의 선물을 잘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베풀어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은 그 겸손한 마음 위에서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번에 저도 어머니의 병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의학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다 생각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언제 운명하실지 알 수 없다는 그러니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정말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구나.’라고 깨달으면서 정말 간절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 전에 드린 기도는 건성으로 드린 기도 같았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이제 출혈도 멎었고, 치료를 위해서 한 달 이상 음식은 물론이고 물도 못 드셨으니까 이제 음식을 먹기 위한 준비로 하루에 요플레 하나를 드십니다. 정말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죠?! 형제 자매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의 처지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죽게 되고 우리의 삶을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을 때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자기 위안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내어놓은 돈일까요? 그리스도께서 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믿고, 내 여유분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하느님을 위해 (복음 속의 과부처럼) 나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1독서의 과부처럼) 나에게 꼭 필요한 것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닐까요? 형제 자매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당신이 가진 일부를 내놓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우리에게 전적인 봉헌을 요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당신의 생명까지 다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사드리는 행위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번 한 주간을 살면서 하느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정말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지니고 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을 각오로 사랑을 실천해봅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더 풍성한 선물을 베풀어주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대구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출처 : 참된 봉헌은?^^*
글쓴이 : 봉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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