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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워해도 될까? ^^*

배은기 쌤 2010. 9. 5. 13:18


- *♥* 미워해도 될까?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죠? 태풍 곤파스가 할퀸 상처를 복구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있는데 또 다른 태풍 말로가 올라온다니 걱정입니다. 말로가 큰 피해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기도드려야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형제 자매님, 오늘 복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중에서도 부모를 특별히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며 혼인은 풀 수 없는 인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봅니다.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정을 버려야겠는데 그러면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탄하겠는가? 그러니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한정된 말씀이리라. 혹시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해당된다면 예수님을 위해서 특별한 삶을 살고자하는 수도자나 성직자들에게 한정해서 하시는 말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계시니 이 말씀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시 “옳지 잘됐다. 요즘 남편이 영 마음에 안드는데 예수님이 미워하라고 했다고 하며 욕이나 실컷 해주자.” 혹은 "요즘 아내가 고분고분하지 않고 바가지만 긁어대는데 예수님이 미워하라고 했다면서 한 대 때려주자."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 그러면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이 평화가 아니라 가정마다 불화를 가져다주게 되니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복음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워한다”는 말의 뜻을 올바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셈족 말의 표현에서 “미워한다”는 말은 ‘어떤 것을 일부러 둘째 자리에 두어 소홀하게 여긴다.' 는 뜻입니다. 곧 제자가 되려고 예수님께 오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뒷자리로 미루어 놓고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모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선물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학생들을 줄 세웠습니다. 그런데 내가 선물을 가장 먼저 주고 싶은 사람이 저 뒤에 있다면 “여기 앞으로 와!”라고 불러서 먼저 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물을 나누어주다가 차례가 된 사람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너는 저 뒤에 가서 다시 줄 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는 나와 관계되는 모든 것을 2차적인 것으로 돌리고 예수님을 가장 앞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꼭 무엇을 주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아! 예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지.” 라고 생각하고 식사 전 기도를 드리는 것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계속해서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방해되는 이기적인 자아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고집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 곧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기 위해서 다른 것을 다 뒤로 밀쳐야 한다는 것을 의무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의무이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 보답하는 당연한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사랑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형제 자매님,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 생활을 잘 돌아본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스스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평범하게 하루를 사는 것 같아도 얼마나 많은 위기들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하루를 잘 지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 공기가 없으면 10분도 견디지 못하는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형제 자매님,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낄 때 용기가 생기죠? 그런데 그분이 하느님이시라면 우리는 더 큰 용기를 갖고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분열과 갈등과 미움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즉, 예수님을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된 결과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분열과 갈등과 미움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만이 완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 형제 자매님, 우리는 그 예를 오늘의 제2독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로 그분의 삶을 철저히 본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모셨고 또 그분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무런 선입견이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이런 사랑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에 필레몬에게서 도망친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이제 그를 종으로 대하지 말고 귀중한 형제처럼 대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세상사람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자신의 가족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 가정은 전보다도 더 화목하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내 모든 것의 첫자리에 모실 때 우리는 더욱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우리는 단순히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또 다른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바오로 사도처럼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따른 분을 또 한 분 알고 있죠? 얼마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이태석 요한 신부님입니다. 수단의 이름 없는 마릉 톤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분. 힘없고 가난한 수단의 아이들을 돌보시느라 자신의 병은 신경도 쓰지 않으셨던 분. 분명 자기 자신보다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먼저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9월9일 '울지마 톤즈'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5일간 관객수를 보고 개봉관 숫자를 늘리고 상영기간도 연장을 한답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님께서도 영화를 보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주변에 홍보도 해주시고요. 분명 영화를 보시면서 형제 자매님을 향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 대구 남산동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출처 : 천진암
글쓴이 : 봉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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