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여전히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계시죠? ^^*
기쁨을 누리지 못하신다면 오늘 미사를 통해서
주님 부활의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번 주 교구 주보에 강론을 쓰는 날이라서
오늘은 주보에 실었던 강론을 그대로 보내드립니다. ^^*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형제 자매님께서는 행복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잘 알아듣고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요한복음은 20장으로 끝났고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주인공의 마지막 말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도 이 마지막 말씀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배경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사도들은 두려워서 문을 잠가 놓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시며
제자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과 함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도들이 그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토마스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손과 발에 난 못 구멍을 보고
손가락을 넣어봐야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토마스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도들이나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게 되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미사를 드리고 있는 우리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그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되자
너무나 강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서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요한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사도들과 꼭 같은 체험을 할 수가 있고 토마스와 같이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심어주고자 합니다.
다시 오늘 복음에 주의를 기울여 봅시다.
처음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모여 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왜 다시 모였겠습니까?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즉 다시 모인 사람들은 한 주일이 지나고 다시 주일이 되어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서 모인 공동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일 미사를 드리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
사도들의 후계자 곧 교회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받은 사람,
믿기는 하지만 완전히 믿지를 못하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토마스요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은 그런 우리가 교회의 전례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전례 특히 미사성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곧 그분의 파스카 제사를 성사적으로 보여주고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사에서 듣게 되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당신 몸까지 다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닮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전례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뵐 수 있고
그분의 목소리를 분명히 듣게 될 것입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남산동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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